제목 | 홍영기(洪英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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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1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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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복흥면 어은리 출신으로 日本東北帝國大學을 졸업한 홍영기 전 국회부의장은“길이 아니면 가지않는”오직 곧은 삶을 살아왔다. 일본 東北제국대학 유학시절 「우리들」이란 비밀지하조직을 결성하여 「조선민족의 지도이념」을 연구하다 체포돼 3년간의 옥고를 치루었다.
해방후 군법무관 시절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세를 휘둘렀던 金昌龍특무대장의 용공조작을 거부하며 지조와 소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해방이후 줄곧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며 특히 육군본부 법무감실 법무차감때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에게 총살형을 언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60년 5대째 순창에서 민의원(민주당)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뒤 6대 때는 서울 서대문(민중당), 8대 때는 서울 성동(신민당),13대 때는 임실-순창(평민당)에 다시 당선돼 원내에 진입한 뒤 14대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또한 그는 70년대초 국회에서 유신정권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제기 보안사에 구금된 전력이 있고 11,12代는 정치규제로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으며 80년대 들어 民推協 부의장,平民당 부총재,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 하기도 했다. 14대의원 시절 7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국회 재무위에서 발언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도. 의지가 곧고 청렴 결백했던 홍영기 전국회부의장은 항상 양복상의에 손수건을 꼿고 흰색 승용차를 고집했던 멋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