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명전설(장원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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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2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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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록자 : 이종진ㆍ장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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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면 반월리 류근호씨댁 아미산 꼭대기에 시루봉이 있지. 그런데 이 시루봉을 장원봉이라고 하지. 장원봉은 풍산면ㆍ옥과면ㆍ팔덕면 순창읍 등 4개 면에 걸쳐있어 풍산면 것이라 할 수 없고 순창군 전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장원봉은 원래 시루봉이라고 했지요. 이 시루봉은 아주 큰 시루를 딱 엎어놓은 것같이 생겨서 시루봉이라고 하지. 삼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한 면으로만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지. 그리고 풍산면 상죽리 마을 뒤에 서당터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지금도 서당터라고 하지. 과거에 이곳에 서당이 있었다고 하데. 풍산과 금과 쪽에서 학동들이 모여들어 서당에서 수학을 했다는 것이여. 서당에서 공부를 하면 언젠가는 시험을 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장원을 하게 되면 누구든지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어.
그런데 이 시험에서 항상 장원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 서당에서 시험만 치르면 장원을 하게 되는 것이여. 그런데 장원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지. 그러자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몇번이고 장원을 하지 못하자 속이 매우 상했던 모양 이여.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그 사람을 이렇게 두었다가는 나는 한 번도 장원을 하지 못하지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여. 하루는 그 사람을 감언이설로 꾀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동원했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무슨 핑계를 대가지고 장원한 사람을 시루봉 위로 놀러 가자고 해놓고 같이 올라갔던 것이여. 장원한 그 학동은 전혀 낌새를 알지 못하고 친구들끼리 놀러 간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여. 오래간만에 친구들과 함께 놀러 왔으니 술 한잔 먹고 놀다가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지자 살짜기 장원한 학동과 이야기 하는 듯하며 정상에서 발로 차서 밀어 버린 것이여. 그래서 장원한 학동이 떨어지면서 흘린 뻘건 피가 있고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장원한 사람의 한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하여 장원봉이라고 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