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명전설(회문산의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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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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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록자 : 양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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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소 회문산은 옛날부터 명당이 많다는 전설에 따라 전국 각처의 쟁쟁한 부호가나 풍수쟁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곳이 도적의 소굴이 된 것은 명당을 얻으러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상당한 재력가들도 있어서 산을 잘 보는 풍수쟁이를 데리고 구산을 하자면 상당액의 노자를 몸에 지니고 다니므로 그 노자 돈을 노렸기 때문이다.
그밖에 이유가 있다면 회문산은 거산이라 순창ㆍ임실ㆍ정읍ㆍ장성ㆍ담양 등 다섯 개 군을 범접하고 있는 광할한 지역 이므로 보통 병력으로는 토벌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노략질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곳이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떼도적이 한창 성할 때 그 우두머리로 백용이란 자가 있었다. 그의 용모를 말하자면 키가 8척 장신이요, 눈은 쇠방울처럼 컸으며 모지랑 빗자루 같은 눈썹을 가진 험상(얼굴모양)이였는데 힘이 장사여서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아 무리 중의 괴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산 아래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있어 빈번하게 어린아이가 호식을 당하고 그밖의 개, 돼지 염소 등 가축을 물어가곤 했다. 해가 지고 산 그늘만 지면 호랑이가 산 그늘 따라 내려온다고 벌벌 떨며 조금은 더 일할 수 있는데도 일찍 집으로 돌아가서 가축단속을 하였고 개를 마루 밑에 가두고 돼지 울을 망으로 덮는 등 부산을 떨었다. 이처럼 무서운 호랑이도 괴적 백용이는 어디서고 만나기만 하면 한주먹에 때려 잡았으니 얼마 후에는 회문산 호랑이들이 백용이에게 쫓기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산아래 사람들은 그 후부터 호랑이 잡아먹은 백용이라고 추앙하면서 오히려 도적의 우두머리를 존경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랑이를 없애준 일뿐만 아니라 회문산의 산아래 동네 사람들은 절대로 괴롭히지 않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으며 오히려 못 살고 외로운 동네 사람들이나 주막집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뺏어온 돈과 곡식을 때때로 나눠주고 위로하면서 의좋게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회문산 주변 가까운 산아래 동네사람들은 회문산 호랑이의 씨를 말린 우악한 도둑놈 백용이를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었으며 오히려 협조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산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사람들은, 특히 부자들은 백용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악명이 높은 떼도적이었다. 한참 성할 때는 200명이 넘었으며 백용은 첩을 다섯씩이나 거느리고 살았으며 항상 백마를 타고 다닐 정도로 호사스럽게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수하 도적들도 여자 없는 놈이 없다시피 지냈으며 그들의 관할구역이 5개 군이나 되다보니 오늘은 동쪽으로 내일은 서쪽으로 모레는 남쪽으로 쉴사이 없이 노략질을 하여 큰 재산을 모았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아까 말대로 그들이 웅거하고 있는 회문산이 너무 크고 깊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우두머리 백용이 죽은 후로는 점점 세를 잃고 얼마 안 가서 자멸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배울 것 하나도 없는 이야기지만 군지 전설편에 없는 이야기이므로 여기 옮겨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