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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제목 인물전설(소금장수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6-01-26 22:35

본문

●제보자 : 함안조씨(어머니)
● 채록자 : 양정욱
● 채록장소
    인계면 도사리 자택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먹던 시절 전라도 순창땅 어느 두메산골에 마음씨 좋은 소금장수가 살고 있었다. 소금장수 십년에 남는 것은 쪽지개와 참나무 작대기뿐이라고 원래가 착한 성품에 거짓말을 못하여 가난하게 살았어도 언제나 부지런하고 또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한 용감한 청년이었다. 서른 살이 넘도록 노총각이 장가갈 엄두도 못내고 소금 쪽지개만 지고 다니니 동네 어른들은 빈정대면서도 걱정했다. "그놈의 작대기 언제나 버릴테냐." "그 작대기가 니 색시냐." 그러면 이 노총각은 싱거운 대답만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이다. "앗따, 말심 마시 기라우. 장가를 못 갔으면 못갔지 이 작대기는 못버리겠구만유"하며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난 참나무 착대기를 색시마냥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날도 소금장수는 집을 멀리 떠나 높고 험한 산마루를 넘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물이라도 찾아 허기를 채워볼 양으로 샘터를 찾았으나 아무리 헤매어도 물을 찾지 못하고 어느덧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그늘만 짙게 깔려 오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할 수 없이 물을 포기하고 무거운 소금짐을 지고 산을 내려오고 있는데 마을의 불빛이 발 아래 굽어 보이는 파뫼등에 당도 했을 때였다. 별안간 이상한 예감과 환상을 동시에 느끼며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참나무 작대기를 쥔 손아귀에 힘을 잔뜩 실었다. 여차하면 손오공의 여의봉이 될 수도 있는 작대기. 그러나 눈 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정말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들이었다. 은빛 같은 하얀털에 싸인 괴물이 그 무덤을 뛰어넘기 시작한 것이다. 전후, 좌우, 동서남북으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다가 땅굴 넘는 곡예를 하더니 어느 순간 여우는 간데없고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창창거리며 두리번거리다가 마을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골짜기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손에 땀을 쥐고 그 광경을 지켜본 소금장수는 이 요물을 노칠세라 살살 뒤를 쫓아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노파로 변신한 백여우는 어둠에 잠긴 해묏골에 당도하더니 천연덕스럽게 골목길을 접어 들었다. 소금장수는 놓지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소금이 무거운 것도 잊고 참나무 작대기만 부지런히 짚어대며 마을로 따라갔다. 노파가 자주 다니던 집처럼 묻지도 않고 동네 고샅길을 한참이나 누벼가며 찾아간 집은 서슬 높은 대문에 으리으리한 부잣집이었다. 그리고 노파는 그 부잣집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소금장수는 할 수 없이 그 집 대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아 하룻밤 잠자리를 구하였다. 그랬더니 깔머슴쯤 되는 놈이 나와서 "여봐요, 소금장수 양반. 밥을 얻어 먹을려면 때 맞추어 와야지 오밤중에 와서 밥이 어디 있담. 있다가 별당굿이 끝나면 참이 나올 것인게 그것이나 먹도록 하여"하였다. 소금장수는 밥얻어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니므로 그런 것에는 신경 쓸 일이 아니고 다만 오늘 밤 이 집안에서 벌어질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었다. 소금장수는 일단 머슴 허락을 받았으니 소금지게를 행랑체에 받쳐놓고 참나무 작대기를 들고 슬금슬금 징소리가 요란한 별당쪽으로 숨어들어 갔다. 그리하여 쇠머리 돼지머리를 잔뜩 고여놓고 거창하게 차린 굿판 근처까지 가서 몸을 숨기고 그 광경을 보는데 참으로 아슬아슬한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이 집은 이 고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 양진사네인데 무남독녀 딸 하나를 두어 금이야 옥이야 귀엽게만 키우다가 나이 열일곱 되었는데 원인모를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금강산에서 왔다는 늙은 보살 할멈을 만나 살풀이를 하고 액맥이 굿을 한답시고 한참 시끌뻑적 하던 중이었다. 아까 파뫼등에서 만난 백여우가 노파로 변신하여 이집 초당 깊숙이까지 들어와 굿판을 벌이고 칼춤을 추는데 병든 규수를 마당에 꿇어 앉혀놓고 칼로 전주고 복사나무 회초리로 내리치면서 초죽음을 시키고 있었다. 굿판은 점입가경으로 노파의 손에 들린 시퍼런 칼이 허공에서 번쩍일 때마다 규수의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소리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러다가 혼절하여 정신을 놓았다가도 또 잠시 정신을 차리고 신음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그 칼날이 규수의 목에 꽂힐지 모를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 이 끔찍한 광경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참나무 작대기를 번쩍 들어올려 이때다 싶어 표범같이 몸을 날려서 한참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노파의 아랫도리에 일격을 가했다. 그랬더니 공격을 받은 노파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듯 쓰러져 발발 떨면서도 아직 여력이 있어선지 칼두자리를 휘두르며 혼절한 규수를 향하여 발악을 한 것이었다. 탁 소금장수의 제2탄이 노파의 정수리에 명중하게 되고 캑소리와 함께 노파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노파가 있든 자리에는 은빛같이 하이얀 털로 덮인 백여우가 한 마리가 입에서는 선혈을 토해내며 죽어가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굿판 사람들이 그제야 경우 정신을 차려 자신들이 백여우에게 속아 왔음을 알았고 그 백여우 때문에 꼼짝없이 죽게 된 규수가 천행으로 살아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명의 은인인 소금장수를 칙사모시듯 사랑으로 인도하여 양진사 내외와 규수가 한자리에 앉아 자초지종을 듣고 알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양진사 내외는 소금장수에게 딸을 주고 데릴사위가 되어달라고 정중하게 제의했다. 그러니 소금장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로부터 양진사네 데릴사위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소금장수 아무개가 이러고 저러고 해서 만석꾼 양진사네 무남독녀에게 장가들어 벼락부자가 되었더라는 말이 삽시간에 퍼져 그가 소금장수 시절에 알고 지낸 욕심많은 친구가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반겨 맞이하고 산해진미로 주안상을 차려 후하게 대접한 것은 물론이요 노자까지도 두둑하게 주었다. 그런데 이 친구 떠나기 직전에 한다는 말이 "자네는 이제 부자가 되었으니 나를 좀 도와주소"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는가." "어려운 일은 아니고 자네가 쓰다 남은 그 참나무 작대기나 좀 빌려주면 쓰겠는디 안되겠는가, 응?" "글쎄, 참나무 작대기는 무엇에다 쓰게?" "자네도 참나무 작대기로 팔자를 고쳤으니 나라고 안되라는 법이 있는가 잠시만 빌려주게." 사실은 그 쪽지게와 참나무 작대기를 유지로 잘 포장하여 사랑방 실겅에 얹어놓고 때때로 그것을 보고 사는데 이 친구가 느닷없이 작대기를 좀 빌려달라고 하니 주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또 안 줄 수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자니 이 친구가 성을 벌컥내면서 "자네만 혼자 잘 살 것인가"라며 부화를 터뜨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주게 되었는데 "어디다 쓸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빨리 이용하고 갖다주어"하며 쪽보에다가 잘 싸서 실겅가래에 얹어놓았던 참나무 작대기를 꺼내주었다. 그랬더니 기분좋게 가지고 가면서 "내 이 은공은 꼭 갚을 터이니 그리 알고 기다려주소"라는 말을 남겨놓고 총총히 사라 졌다. 한편 친구에게 부적 작대기를 얻어 옳다 됐다. 나도 이제 부자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 욕심 쟁이 소금장수는 일은 팽겨쳐버리고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들고 뒷산 마루턱에 올라가 노파로 변신한 여우를 기다리는 일이 일과처럼 되었다. 그러나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와도 기다리는 백여우는 고사하고 노파 하나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하자니 얼마 동안 놀고만 먹다보니 그 알량한 도시락도 못 쌀 형편이 되어 몹시 초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다니던 어느날 그날도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다가 이제 막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는 그때 별안간 왁자 지껄한 목소리가 있었다. 욕심쟁이 소금장수는 옳다 되었구나 싶어 잽싸게 몸을 날려 길가 덤불숲에 몸을 감추고 살피기 시작했다. 한 노파가 열두 세 살쯤 되어 보인 아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 고갯길을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그의 가슴은 쿵쿵 북을 치듯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나무 작대기를 으스러져라 쥐고 그 노파의 거동을 살폈다. 너댓명의 아이들을 부축하고 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하여간에 할머니를 중심으로 하여 아이들 몇이 뭉쳐 있는 것만은 확실하며, 이 큰 산 고갯길이 할머니가 올 만한 곳은 아니고 보면 역시 백여우가 할머니로 변신하여 아이들을 홀려가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정체파악을 확실하게 한 그는 더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거리가 좁혀지자 길가 풀숲에서 뛰어나와 불문곡직 다짜고짜 노파를 향하여 참나무 작대기를 날렸다. 노파는 단 일격에 창! 하는 소리와 함께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참 때 장정이 마음먹고 내려친 작대기의 위력은 노파하나쯤 문제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겁이 났다. 쓰러지면 여우의 본색이 나와야 하는데 이는 아니었다. 사람 그대로 쭉 뻗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강도, 산적이 나타났다고 울부짖으며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가 버렸다. 그리고 백여우가 둔갑한 것으로 알았던 노파는 쓰러진 채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욕심쟁이 소금장수는 결국 그 참나무로 살인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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