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전설(아들을 살린 계모의 덕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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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2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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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록자 : 양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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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면 도사리 자택 옛날에도 난리가 나면 평소에는 성했던 사람도 엉뚱한 짓을 하다가 욕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했다지만 여기에서는 그 반대로 연약한 아녀자로서 총칼이 위협하는 살벌하고 급한 상황에 직면하여서도 평소에는 몰랐던 아름다운 덕성과 추상 같은 결단이 나와 범같이 사나운 공비 토벌군을 감동시켜 마침내 두 아들을 살리고 한 집안을 지킨 위대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까 6.25 때 인공이 들어와서 한참 후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인공 3개월이 끝나고 지리산과 회문산으로 집결한 인민군 패잔병들과 부역자들이 항전태세를 취하게 되자 순창에도 당연히 공비토벌군이 들어왔다. 바로 그 무렵이다. 순창 가마골에서 그리 멀지않은 한동네에 울산김가 성을 쓰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중년 과부가 전실자 하나와 자기 소생 하나를 낳아 형제를 키우면서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전실에서 낳은 남산이는 스물 다섯 살이고 계모인 권씨가 낳은 북산이는 스물 세 살이 되었다. 이 두 형제는 배다른 형제답지 않게 평소에 우애가 있고 어머니 권씨에게도 효도하는 젊은이들로서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6.25동란이 터지고 인민군이 처들어오자 동네 사람들은 착하고 똑똑한 남산이를 추천하여 동네일을 맡겼다. 그러니까 남산이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동네를 위하여 사양하지 못하고 열심히 동네일을 보았는데 인공이 무너지고 수복하는 과정에서 공비벌군이 들어와 인공 3개월동안 부역한 사람들을 추심하고 조사하여 경중에 따라서는 무죄 방면하기도 하고 더러는 죄가 크다 하여 처형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남산이도 당연히 그 대열에 끼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입산하여 산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고 다만 갑자기 정세가 바뀌어 경황중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선 피신하고 있다가 잠잠해지면 나갈 요령으로 동네 뒷산 후미진 골에 은신처를 만들어 놓고 낮시간은 그곳에 숨어있다가 밤이면 집으로 내려와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남산이는 여느 때와 같이 자정이 넘을 무렵에야 토벌군의 눈을 피하여 집을 향하여 산을 내려오는데 집까지 얼마남지 않은 지점에 왔을 때다. 느닷없이 둔탁한 물체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를 잡기 위하여 동구밖에서 잠복하고있던 토벌군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군당국에서는 상당기간 동안 "부역자는 자수하라"는 포고령을 내리고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산이는 자수한 것이 아니라 토벌군의 작전지역 내에서 체포(생포)당한 것이다. 따라서 군당국의 판단여하에 따라서는 단순한 인공에 부역한 남산이가 아니라 생포공비 남산이라고 규정하고 군법에 따라 직결처분을 행사할 수도 있는 매우 불리하고 위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남산이가 토벌군에게 잡힌 지 3일이 되던 아침나절 동네에 퍼진 소문에 "내일 오후에 순창읍 쇠전머리에서 남산이를 xx한다더라"라는 흉보가 들어왔다. 설마 설마하고 무사히 풀려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권씨의 놀라움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무 정신없이 동네사람들이 마련해준 자전거를 둘째아들 북산이가 운전하고 뒷자리에 실려서 토벌군 중대본부를 찾아간 어머니 권씨는 중대장과 수사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내가 팔자가 기박하여 전실자가 있는 영감을 얻어와서 자식 하나를 더 낳아 키우면서 살 만하더니 박복한 소치로 영감까지 일찍 돌아가시고 여생을 오직 두 자식에게 의지하고 사는데 난리를 만나 자식을 지키지 못하게 되니 철천지 한이 되고,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죄값은 받아야 하므로 죄진 내 자식 하나 내어주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진실은 밝혀야하겠기에 이와같이 왔노라 "면서 눈만 크게 뜨고 어안이 벙벙해하는 수사관들을 향하여 확실하게 진술한 것이다. " 사실은 아낙의 좁은 소견으로 내가 낳은 자식을 살리기위하여 묻어온 사실인데 진실로 사상이 달라 인공에 부역한 놈은 남산이가 아니라 북산이며 따라서 죄를 주려거든 북산이에게 주십시요. 그래야만 죽어서 황천에라도 가면 영감을 만날수 있을 것 같아 뒤늦게나마 깨닫고 실토하는 것이니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으니 남산이를 내어주고 북산이를 잡아가시오"라고 방성통곡을 하더니 잠시 혼절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무리 군법으로 시행한 일이라도 잠시 멈추고 재조사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 마침내 이 일이 지리산지구 공비토벌군 사령부에까지 알려져 엄정한 재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어머니의 그 아들로 북산이 역시 수사관들의 날카로운 추궁에도 불구하고 시종여일하게 어머니의주장을 뒷받침하여 우리 형 남산이는 억울하니 방면하고 실제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고 실제로 부역한 나를 잡아가라고 주장하였다. 남산이는 남산이대로 수사관을 만나 내가 부역한 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일축하였다. 때마침 엄동설한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겨울에도 그로부터 4일 동안을 어머니 권씨는 실성한 사람처럼 군막사 처마 밑에서 밤낮을 배회하며 틈만 있으면 중대장이나 수사관들을 붙들고 큰아들 남산이는 억울하며 선영을 맡은 장손이니 제발 살려주시고 죄를 지은 북산이를 대신 벌하여 주실 것을 눈물로 호소하기를 계속하였다. 그 다음날에서야 비로소 토벌군 사령부에서 결정이 내렸는데 "남산이가 부역한 것은 사실이나 그 정상을 참작하여 군부대사역 30일에 처한다"라고 하였다. 조사결과 남산이가 인공에 부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이 경미하고 북산이 역시 형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을 대신하고자 한 우애가 가상하며, 특히 어머니 권씨의 자기 소생인 북산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전실소생 남산이를 보호하려는 덕행을 참작하여 장고 끝에 군사령관의 직권으로 남산이에게 면죄부를 내리게 된 것이다. 아, 난세를 만나 한 치 앞을 가누지 못한 때에도 덕을 잃지 않고 행하면 이런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