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전설(호랑이를 타고다닌 두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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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2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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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록자 : 양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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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면 구미리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1498년, 연산 5년)에 동계면 무량산 밑에 있는 구미마을에 양배(楊培)ㆍ양돈(楊墩) 두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현령을 지낸 바 있는 양자첨(楊子瞻)의 아들로 배(培)의 아호는 구암(龜巖)이라 하고, 돈(墩)의 아호는 매당(梅堂)이라 하였다. 이들은 연산군 때 인물로 때마침 무오사화(1498)ㆍ갑자사화(1504)가 연이어 일어나 유능한 선비들이 당쟁의 제물로 떼 죽음 당한 것을 보고 벼슬길에 환멸을 느껴 과거시험에 응하지도 않았지만 아우 양돈은 부모들의 권유로 1477년(성종 8년) 에 과거시험을 응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형과 뜻이 같았으므로 벼슬살이를 단념하고 형제가 함께 고기를 낚고 벗을 상대하는 일로 낙을 삼았으니 사람들은 이들을 양처사 형제라불렀다. 이들 형제가 의좋게 앉아 낚시를 즐기거나 시를 읊조리던 두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형제바위라하고 또 형이 앉은 바위를 그 이름을 따서 배바위, 동생이 앉았던 바위를 돈바위라 불렀다. 그리고 형제바위가 있는 곳은 종호의 산인동이라 불렀는데 적성강 상류의 만수탄 조소 위에 있으며 그곳에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 하여 이균기(二鈞磯)라 부른다. 이들이 어찌나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였던지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을 나무랄 때는 언필칭 "너희들도 양진사 형제의 우애를 배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날도 두 형제는 어김없이 형제바위의 이균기에 나와 낚시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느덧 해가 서산에 지고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했다. 별안간 일진광풍이 스쳐가더니 난데없이 상여틀만한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두 형제는 처음 당한 일이라 매우 놀라고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동정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두 놈이 서로 애무하고 괴성을 내는 것으로 보아 암수가 아니면 형제호랑인 듯하였으며 또 조금도 어금니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대감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바라다보기만 하던 호랑이가 물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오더니 그들이 앉아있는 형제바위 근처까지 와서는 돌아서서 뒷걸음질쳐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꼬리를 막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그제 서야 호랑이의 뜻을 알아차린 두 형제는 아마도 등에 올라타라는 것이구나 싶어 각각 호랑이 등에 올라타보았다. 그랬더니 두 호랑이는 크게 한번 포효하더니 쏜살같이 내달아 순식간에 그들 형제가 살고있는 집 대문 앞에 당도하였다. 그로부터 두 형제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며 낚시를 즐겼는데 한번은 추강 남효온(秋江 南孝溫)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호랑이는 영물이라 선비를 알아본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집에서 키운 개도 타본 일이 없다고 하였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아무튼 무량산 호랑이도 덕성이 높은 두 선비를 알아보고 이와 같았다는데 이상하게도 10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던 호랑이가 100일이 넘자 그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두 형제는 호랑이 형제와의 정의를 잊지 못하여 호화를 그려서 벽상에 붙여놓고 때때로 그리워하였다. 그로부터 한참 후 어느 해 겨울에 무량산에 눈이가득 쌓인 날 토끼몰이를 갔던 장정들이 무량산 꼭대기에서 새끼호랑이 두 마리를 잡아기지고 왔다. 이것을 본 두 형제는 깜짝 놀라 그 호랑이를 많은 금전을 주고 사서 무량산 중턱에다가 풀어 주었다. 그것은 전일에 호랑이와의 인연을 생각해서였다. 그랬더니 그날 밤 꿈에 전에 만났던 두 호랑이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죽게 된 새끼를 지켜주신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앞으로도 무량산 주변에서 같이 살아갈 것인데 저희 족속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선비님들 자손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첩첩산중인 이곧 무량산 아래 귀미마을에서 두 선비의 자손들이 500년을 세거해오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자손 중에 호환을 당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 자손들도 사냥을 하고 몰이를 하고 덫을 놓아도 호랑이를 잡거나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꿈에서 만난 호랑이와 약속이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후일에 두 선비는 향사를 받았는데 형은 지계사에서 제향하고 아우는 아계사에서 제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정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형의 정자는 구암정(龜巖亭)인데 지방문화재 제131 호요, 아우의 정자는 광제정(光霽亭)으로 지방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어 국비로 관리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