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찰연기전설(빈대탑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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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06-01-26 1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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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록자 : 양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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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면 도사리 자택 고려 초기에 있었던 옥천사는 지금의 순창읍 순창리에 있는 순창여중학교 부근에 있었으며 그때 절경 내에 세웠던 삼층석탑이 지금의 여중학교 뒤뜰에 보존되어 있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관리하고 있으며,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크거니와 여기에는 토속의 체취가 물씬 나는 전설 한 토막이 전해오고 있다. 시화연풍하여 시주가 구름과 같이 모여든 옥천사는 한때, 매우 번창하여 큰 가람을 이루었다.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절방에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절의 운세가 기울어 마침내는 빈대에 부대끼어 그처럼 성하던 시주도 떨어지고 중들도 다 도망가고 늙은 주지승이 상좌 한 놈을 데리고 겨우 제불전 공양이나 올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늙은 객승이 찾아와 하루밤을 쉬어가는데 그렇게 번창했던 오건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자 주지승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기를, "5,6년 전부터 난데없는 빈대가 생기더니 그 수가 점점 퍼져서 대웅전 마루방까지 떼이어 나오며, 그렇게 된 후로는 승려도 도망가고 시주도 한 이가 없으니 자연히 빈 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빈도가 불심이 나약하여 이와 같은 일이 생겼으니 대사께서 높은 도력으로 이 절에 빈대를 없애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곡히 청원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날 밤에 주지스님과 객승이 한 방을 쓰는데 주지승은 빈대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밤을 전전하고 있는데 곁에서 잠이 든 객승은 뇌성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바야흐로 꿈의 삼매경을 즐기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호롱불을 켜들고 보았더니 빈대들이 객승쪽으로는 한마리도 가지 않고 자기쪽으로만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시각쯤 지났을까. 곤히 잠들었던 객승이 크게 기지개를 펴고 나더니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는데 한 식경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 혹시나 칫간에 볼일 보러 갔다가 호식이나 당한 게 아닌가 걱정이 돼 밖으로 나가보니 벌써 동녘 하늘이 희뿌옇게 새벽을 알리고있는데 별들이 빛을 잃은채 깜밖이고 있었다. 그런데 마당 저편에 어스럼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데 탑모양이 분명하다. 전에 없던 것이어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아도 탑은 탑인데 전에 없던 것이 왜 이 자리에 있단 말인가하고 좌우를 살펴보니얼마전에 자다가 말고 방을 나간 객승이었다. 두손에는 덪가리만한 바윗돌이 한 개씩 들려있고 간밤에 살짝 비가 내려서인지 나막신 차림이었다. 놀라 나자빠진 주지승을 본 객승은 껄껄 웃더니만 주지스님은 공사가 끝났는데 이제야 일어나면 되느냐고 하면서 방에가서 빈대난 한 마리 잡아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빈재 한마리를 잡아다 주었더니 객승 하는 말이 " 이 빈대를 탑안에 가두어놓을 터이니 이후부터는 빈대를 두려워 하지 말구 불사나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그후부터 옥천사는 빈대 한마리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절이 되어 전과 같이 거대한 가람을 이루고 장명등 불야성속에 수수백의 승려들 독경소리가 십리 밖에까지 은은히 들렸다. 그러나 운세가 다하였음인지 그로부터 백여 년 후 고을 원님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병들어 백약이 무효라 손 쓸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원님 꿈에 옥천사 석탑 속에 갇혀있는 빈대가 현몽하여 말하기를 "제가 백 년 동안을 석탑속에 갇혀있으니 그것이 한이 되어 그러하오니 저를 풀어주시면 아가씨의 병이 나을 것이여, 아니면 며칠 안으로 요절할 것입니다"하였다. 더욱 괴이한 일은 하룻밤새 세번씩이나 똑같은 꿈을 거듭꾸고 난 원님은 날이 새자 옥천사 석탑에 대한 연유를 측근에게 물어본즉 과연 빈대와 무관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결심하기를, 우선 딸부터 살려놓기로 하고 군사 수십명을 동원하여 옥천사 석탑의 개석을 열고 보니 놀랍게도 주먹만한 빈대 한 마리가 엎어져 있는데 방금이라도 잡아다 놓은것처럼 펄펄하게 살아있었다. 승려들은 큰일이 났다고 야단들이면서도 관원들이 하는 일이라 속수무책으로 멍하니 굿이나 보고 있는 사이에 빈대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후 원님의 무남독녀 외동딸은 병이 나아 일어났지만 옥천사는 또다시 빈대가 성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절을 혁파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혹시 이 전설이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그토록 도력이 높은 객승은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순찬군지사암지편을 보면 인계면 개심산에 개심사를 창건한 이는 무량국사이며 그 연대는 835년이다. 옥천사의 삼층석탑을 고려 초기 것으로 본다면 고려 원년이 918년이고 그사이 연차는 많지 않으므로 혹시 유명한 무량국사가 팔도강산을 주유 끝에 이 지역 개심산에 와서 불사를 일으켰으니 의당 옥천사에도 들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무로 어쩌면 그때 그 빈대탑을 하루 아침에 쌓아 올린 객승은 무량국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